쇼핑의 날, 블랙프라이데이란?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추수감사절(11월 넷째 주 목요일) 다음 날인 금요일로,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현재는 연말 쇼핑 열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소비 이벤트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런 날은 아니었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은 1960년대 필라델피아 경찰들 사이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경찰들은 추수감사절 다음 날 도심에 몰려드는 쇼핑 인파와 교통 정체로 인해 업무가 배로 늘어나는 이 날을 불만 섞인 어조로 '블랙프라이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표현은 소매 업계에서 회계상 적자(red ink)에서 흑자(black ink)로 전환되는 날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재해석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소비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 당일에는 새벽 5시부터 백화점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며, 일부 소비자들은 텐트를 치고 밤을 새기도 합니다. 평소 1,000달러가 넘는 대형 TV나 전자기기, 고가 장난감, 명품 의류를 반값 이하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가족이 이 날을 '게임처럼' 즐기곤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아마존, 베스트바이, 타겟 등 대형 리테일러들의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접속량이 폭증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 시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매출과 실적 전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유통업종뿐 아니라 물류, 광고, 결제 시스템, 핀테크 등 다양한 산업군에도 경제적 파급 효과가 이어집니다.
소비가 늘면 주가도 오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면 기업의 수익도 늘고, 이는 곧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 같지요. 실제로도 일정 부분에서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대형 리테일 기업들, 예컨대 월마트(Walmart), 타겟(Target), 아마존(Amazon) 등은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의 판매 성과에 따라 연말 실적과 주가 흐름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블랙프라이데이 이후에 곧바로 주가가 오르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소비가 늘어났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주가가 반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투자자들은 단지 매출이 잘 나왔다는 소문만으로 주식을 사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얼마만큼 팔렸는지, 마진은 얼마나 남았는지, 해당 기업의 분기 실적이 전년 대비 얼마나 개선됐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숫자가 뒷받침되어야만 본격적인 주가 반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블랙프라이데이 주간에는 소비자들이 매장에 몰리고 온라인 결제가 폭증했다는 뉴스가 나오더라도, 기업이 비용을 많이 들여 마케팅을 했거나, 할인 폭이 지나치게 컸다면 실질적인 수익성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보통 주가는 블랙프라이데이 다음 주에 바로 움직이기보다는, 실제 판매 데이터가 발표되는 12월 중순 이후나, 더 구체적인 매출·이익이 공개되는 다음 분기 실적 발표 시점에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흐름은 매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전체 시장보다는 유통 섹터나 소비재 관련 ETF(예: XLY, XRT)에서 변동성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특정 계절에 잘 팔리는 상품처럼, '유통 업종'이 이 시기에는 시장의 주목을 더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블랙프라이데이를 중심으로 한 시즌에는 이러한 ETF를 중심으로 단기적인 거래 전략이 활발히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블랙프라이데이와 월말 효과
흥미롭게도, 블랙프라이데이는 월말과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월말 효과(Month-End Effect)'입니다. 월말에는 많은 기관 투자자들, 특히 펀드매니저들이 한 달 동안의 투자 성과를 정리하고, 다음 달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보유하던 종목을 팔고 새로운 종목을 매수하거나, 전체 자산의 비율을 조정하는 '리밸런싱(rebalancing)'이라는 작업이 이루어지는데요, 쉽게 말하면 '내 포트폴리오 안의 음식 재료를 다시 예쁘게 담는 것'과 같습니다. 이로 인해 월말에는 매수세가 커지는 경향이 있으며, 시장이 일시적으로 활기를 띠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블랙프라이데이 시즌과 겹치게 되면, 유통업종 종목들은 짧은 기간 동안 강한 상승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특히 매출 실적에 대한 긍정적인 초기 전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단기 매매를 즐기는 트레이더들 사이에서는 "지금 들어가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빠르게 형성됩니다. 이로 인해 주가가 단기간 내에 크게 오르기도 하죠.
2020년에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아마존은 온라인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에서 역대급 매출을 올렸고, 이 기대감은 곧바로 유통 업종을 대표하는 ETF인 'XRT ETF'(미국 유통 소매업체들의 주가를 모은 펀드)에 반영되어, 해당 주에 약 6% 가까운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단기 트레이더들의 움직임이 항상 장기 투자자에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주가가 단기간에 과도하게 오르면 오히려 불안정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럴 때 섣불리 따라가기보다, 과열된 흐름이 진정된 뒤 실제 실적이 확인된 다음에 더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시장의 '기대감'과 '현실'을 구분해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에게 주는 힌트는?
블랙프라이데이 이후 시장을 바라볼 때 중요한 점은, 단순히 소비가 늘었는지 여부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매출 데이터와 소비 심리 지수”를 함께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눈앞의 소비 행태가 단기적인 흐름에 그칠 수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전반적인 심리 상태와 기업의 실질적인 매출 성과는 그보다 더 넓은 투자 방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신뢰지수(Consumer Confidence Index)'는 미국 민간 조사기관인 콘퍼런스보드(Conference Board)에서 발표하는 지표로, 앞으로의 경기와 고용, 소득 전망에 대해 미국 소비자들이 얼마나 낙관적으로 생각하는지를 수치로 보여줍니다.
또 다른 지표인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경제 전망과 실제 소비 의향 등을 조사해 발표하는데요, 이 두 지표는 기업의 매출과 실적이 실제로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는 선행 신호'로 자주 활용됩니다.
블랙프라이데이 주간에 소비가 활발했더라도, 같은 시점 발표된 소비자신뢰지수가 하락했다면 투자자들은 오히려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판매 수치가 기대 이상이고 소비 심리도 함께 상승 중이라면, 이는 다음 분기 실적에 대한 강력한 긍정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통 관련 종목은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에 단기적으로 급등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상승은 일시적인 기대감에 의한 것이므로 이후 조정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컨대, 단기적으로 많은 기대가 몰리면 주가는 실제 실적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선반영'되는 경우가 생기고, 실적이 예상보다 평범하거나 부진할 경우에는 투자자들이 빠르게 차익을 실현하며 매도에 나서면서 주가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과도한 낙관론'은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긍정적인 전망에 기대어 주식을 빠르게 매수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럴 때는 주가가 실적이나 경제 펀더멘털보다 앞서서 움직이기 때문에, 오히려 중장기 투자자라면 한 발 물러나 시장의 과열 신호를 경계하고 실제 수치와 흐름이 확인된 뒤에 대응하는 것이 더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블랙프라이데이 이후의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쇼핑 열기만 보기보다는, 숫자와 심리를 함께 보는 두 가지 관점을 균형 있게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