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에너지 자립이 어려운가?
대한민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공급의 약 92% 이상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석유, 석탄, 천연가스는 대부분 중동, 호주, 러시아, 미국 등 외국에서 수입됩니다. 한국에는 석유·가스·우라늄 등의 에너지 자원이 거의 없으며, 석탄 또한 품질과 채산성 문제로 대규모 채굴이 어렵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기존 자원의 고갈과 함께 국제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이 심화되면서, 에너지 수입 구조의 취약성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 구조는 한국이 외교적 리스크나 국제 시장의 급변에 매우 취약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국제 원유가격 폭등으로 전력 요금이 급등했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에너지 수입 수요가 급증하면서 LNG 가격이 동반 상승해 한국의 산업계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한국의 발전 비용과 산업용 연료비를 폭등시키며 전력 수급 위기까지 우려되는 상황을 낳았습니다.
또한 에너지 수입의 주요 통로인 국제 해상 물류망이나 운송 보험 체계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단순히 자원을 구입하는 것만으로는 에너지 안보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유가, 가스 가격의 급변과 함께 운송 차질이 발생하면 가격과 수급이라는 이중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탄소국경세(CBAM), 글로벌 공급망 재편, 수소경제 전환 등으로 에너지 구조의 복잡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에너지 안보 개념도 단순 수급에서 지속가능성과 주권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에너지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에서, 누가 통제하느냐, 어떻게 생산하고 저장할 수 있느냐, 그리고 국민의 삶과 산업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느냐까지 아우르는 넓은 관점에서 에너지 전략을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에 한국은 서 있는 것입니다.
에너지 전환기, 원전의 위치는 어디인가?
한국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원자력 발전에 집중 투자하여, 현재 전체 전력 생산의 약 27~30%를 원자력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리, 한빛, 한울, 신고리 등의 원전 단지는 기술 축적과 경제성 면에서 한국의 핵심 에너지 인프라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한국은 또한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바라카 원전을 통해 원전 기술 수출국 반열에 오른 바 있으며, 이는 국제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레퍼런스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표방하며 신규 원전 계획을 백지화하고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시도하면서, 에너지 정책의 방향에 큰 전환점이 생겼습니다. 이후 윤석열 정부는 다시 원전 확대 정책으로 선회하였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노후 원전 수명 연장 등이 추진되면서 원자력의 역할이 재강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은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기술 안전성, 폐기물 관리, 지역 수용성, 국제 기준 등 다양한 조건들이 얽혀 있는 복합 이슈입니다. 무엇보다 2025년 6월에 예정된 새 정부 출범 이후, 에너지 기조가 다시 한번 조정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정책 논의의 틀을 넓히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시기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재생에너지, 현실과 기대 사이의 간극
한편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는 한국이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직 재생에너지 비중은 9~10%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마저도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 효율, 계통 연계, 입지 갈등 문제 등으로 확산이 더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특히 태양광 패널의 무분별한 설치와 관리 부실, 풍력 단지에 대한 지역 반대 운동 등은 정책 추진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현실적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농지 침해, 경관 훼손, 전자파 우려 등을 이유로 풍력 단지에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태양광의 경우에도 설치 이후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산림 훼손, 토사 유실, 화재 위험 등의 문제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더라도, 기후 조건의 불확실성과 계절별 생산 편차로 인해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존재합니다. 예컨대 겨울철이나 흐린 날이 많은 시기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급감하고, 풍력도 바람이 일정하지 않은 날에는 성능이 저하되어 계통 운영의 불안정성을 유발합니다. 이로 인해 한국전력이나 전력거래소는 계통 안정화 기술, 예비 전력 확보, 스마트그리드 구축 등 추가 비용 부담을 안게 되며, 이는 결국 전기요금 상승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지형, 기후, 토지 이용 구조 등은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를 조성하기에 유럽이나 미국처럼 유리하지 않은 조건이며, 산지가 많고 도심이 밀집된 구조는 집중형 발전보다는 분산형 전원 확대 전략이 더 적합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러한 맥락은 결국 에너지 다변화 속에서도 원전이라는 '기저발전'의 역할을 다시 평가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전의 안정적 공존이라는 새로운 조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형 에너지 전략,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앞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단순히 “원전 확대 vs 탈원전”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현실 기반의 에너지 믹스’를 설계하는 유연한 전략입니다. 즉, 신재생에너지의 확대와 함께 기존 원전의 안정적 운영,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수소 인프라 구축, LNG 유연성 확보 등을 균형 있게 조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에너지 정책은 중앙정부의 의지뿐 아니라 지자체의 협력, 산업계의 전환 투자, 시민사회의 이해와 참여가 조화를 이뤄야 하며,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 국제 파트너십 강화를 통해 장기적인 에너지 주권과 생존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2025년 이후 새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한국의 에너지 전략은 정파나 단기 이해관계를 넘어선 '국가 차원의 합의 기반 정책'으로 진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지금이야말로 과거를 되짚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