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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패권은 누가 쥐고 있을까? 중동·러시아·미국의 전략 비교

by 업타운 위너 2025. 5. 6.

석유와 권력: 에너지 패권의 시작

 

에너지 패권(Energy Hegemony)이란 단어는 단순히 석유를 많이 가진 나라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에너지를 무기처럼 활용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글로벌 시장과 정치질서를 움직이는 역량을 뜻합니다. 20세기 내내 세계 질서를 좌우해온 것은 바로 ‘석유’였고, 그 중심에는 중동 산유국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1973년 1차 오일쇼크는 에너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외교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계기였습니다. OPEC(석유수출국기구)을 주도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등은 유가를 무기 삼아 서방 세계에 외교적 압박을 가했고, 미국과 유럽은 처음으로 '에너지 안보'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중동은 단순한 자원 공급지를 넘어 글로벌 외교와 군사 전략의 핵심 지역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석유와 지정학은 깊이 결합되었습니다.

 

에너지 패권의 과거와 현재 – 중동, 러시아, 미국 : 업타운 위너스 이미지 제공

 

 

러시아: 천연가스와 파이프라인 외교

 

러시아는 중동처럼 대규모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유럽으로 이어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네트워크를 보유한 독특한 자원 강국입니다. 이 파이프라인 외교의 뿌리는 소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0~70년대부터 구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과의 에너지 공급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천연가스 수출용 파이프라인 건설을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서유럽으로도 공급 범위를 확대했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이 기존 인프라를 계승하면서 에너지 외교를 체계적으로 무기화하는 전략을 강화했고, 2000년대 푸틴 정권 아래에서 본격적인 파이프라인 확장 외교가 펼쳐졌습니다.

 

2000년대 이후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의존도를 활용해 ‘에너지 외교’를 강력하게 구사해왔고,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로는 가스를 무기로 한 지정학적 갈등이 국제사회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대표적으로 노드 스트림(Nord Stream) 1, 2 파이프라인은 독일 및 서유럽에 직접 연결되며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는 가스 공급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며 이를 경제 협력을 가장한 정치적 영향력 확대의 수단으로 사용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럽은 탈러시아 에너지 전략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노드 스트림 1은 2022년 하반기부터 공급이 중단되었고, 노드 스트림 2는 개통 이전에 사실상 정치적으로 폐기되었으며, 2023년에는 이들 파이프라인 중 일부가 노후화로 인한 가스 누출 사고까지 겪으며 기술적 신뢰성에도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2025년 봄 현재, 전쟁 종식을 향해 가는 국제 분위기 속에서도 러시아는 에너지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은 이 경험을 통해 에너지 다변화와 공급망 안전성 확보를 최우선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향후 중국, 인도, 동남아와의 에너지 파트너십을 확대해 서방 중심의 에너지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출 경로 확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 시베리아 파워 2 (Siberia Power 2)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를 핵심 국책 사업으로 추진 중입니다.

 

이처럼 러시아는 에너지를 통해 경제적 의존, 외교적 통제, 군사적 위협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실현해왔으며, 이는 에너지 패권이 단순한 생산량이 아닌 ‘공급 경로와 조절력’에 달려 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미국: 셰일 혁명과 에너지 독립의 반전

 

미국은 한때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이면서도 산유량이 적어, 중동 의존도가 높았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셰일오일·가스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수평 시추(horizontal drilling)와 수압 파쇄(hydraulic fracturing) 기술의 발전은 기존에 개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지층의 석유와 가스를 경제적으로 채굴할 수 있게 만들었고, 미국은 2018년 이후 세계 최대의 석유 생산국이 되며 순수출국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에너지 자급을 넘어, 중동에 대한 전략적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아시아로의 에너지 수출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하는 새로운 패권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는 당연히 중동 산유국들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셰일 혁명과 LNG 수출 확대는 전통적인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에게는 시장 점유율과 가격 통제력 약화라는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 산유국들은 여전히 미국 달러 기반의 석유 거래 체계(페트로달러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외교적 친밀함 때문만이 아니라, 달러가 국제 금융과 결제 시스템의 표준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다른 통화(예: 위안화, 루블화)로 대체하기엔 신뢰성과 유동성, 결제 안전성에서 아직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중국과의 거래에서 일부 위안화 결제를 수용하거나, 인도·러시아와의 무역에서 루블화·디지털화폐 사용을 테스트하는 움직임도 있어, 장기적으로는 페트로달러 체제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편 미국은 에너지 수출 확대와 별개로, 여전히 자국내 자동차 시장을 휘발유 중심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광활한 국토와 자동차 의존적인 생활 방식뿐 아니라, 정유 업계, 항공 산업, 석유 기반 운송 인프라의 로비와 정치적 영향력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고속철이나 자기부상열차와 같은 친환경 육상 교통 인프라보다 항공 산업이 더 우선시되는 배경에는 보잉(Boeing)과 같은 항공기 제조사, 델타(Delta), 아메리칸 에어라인(American Airlines), 사우스웨스트(Southwest) 등 대형 항공사들의 산업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결국 미국은 자국의 에너지 독립을 기반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석유 기반 인프라에 의존하는 이중적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는 에너지 정책의 전환 속도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정치 로비, 국제 통화 체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변화의 축: 패권의 중심은 이동 중이다

 

이제 에너지 패권은 단지 석유 한 가지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천연가스, 셰일 자원, 핵에너지, 재생에너지까지 포함된 복합적인 에너지 체계에서, 각국은 자국의 자원 구조와 기술력, 수출입 네트워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패권 전략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중동은 여전히 막대한 석유 부국이지만, 재생에너지와 수소 에너지에 투자하며 ‘포스트오일 시대’의 준비를 서두르고 있고,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 제재 속에서 중국 및 글로벌 남반구와의 지정학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은 셰일 기반 에너지 독립과 기후 전략의 양립, 즉 국내 생산은 유지하되 외교적으로는 탄소중립을 강조하는 이중 전략을 통해 ‘안보와 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에너지 패권은 이제 공급량 경쟁이 아니라 공급망의 주도권, 기술의 효율성, 외교 전략과의 결합력에 따라 전개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대한민국을 포함한 중견국가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