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똑똑해질수록, 전기는 더 필요하다
우리는 매일 인공지능(AI)을 사용합니다. 검색엔진, 음성비서, 챗봇, 이미지 생성툴, 추천 알고리즘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는 이미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AI는 마치 보이지 않는 '두뇌'처럼 작동하지만, 실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계산해야 하며, 그 모든 연산이 물리적인 공간, 즉 데이터센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AI가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려면 고성능 컴퓨터 서버들이 끊임없이 작동해야 하며, 이들은 막대한 전기를 소모합니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생성형 AI, 예를 들어 GPT 모델이나 이미지 생성 AI는 훈련(training)과 추론(inference) 과정 모두에서 기존 검색 엔진보다 수배 이상의 전력을 소모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따라서 AI 시대의 본질은 에너지 집약 산업의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력 소비는 기술 발전과 함께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미국: 빅테크와 전력의 허니문 관계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 –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마존(Amazon), 구글(Google), 메타(Meta) – 은 모두 클라우드 인프라와 AI 서비스를 결합한 대규모 데이터센터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AI 연산에 최적화된 데이터센터를 미국 전역에 구축하고 있으며, AI 전용 칩(Nvidia, AMD, 자체 개발 칩 등)과 고성능 냉각 시스템을 도입하여 효율을 높이려 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OpenAI와의 협력을 통해 GPT 모델을 실행할 수 있는 거대한 서버 인프라를 애리조나와 아이오와 등에 구축 중이며, 아마존 웹서비스(AWS)는 미국 내 25개 이상의 리전(region)에 자체 AI 연산용 데이터센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쓰는 전력입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 내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은 전체 전기의 약 3% 이상이며, 이 수치는 AI 수요 증가에 따라 10년 안에 2~3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가동되는 고열 장비로 인해 냉방 전력 수요도 높아, 여름철 피크 시간대 전력망 부담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일부 주에서는 지역 발전소를 증설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정도입니다.
이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PPA)을 체결하거나 자체 태양광·풍력 인프라에 투자하며, 탄소배출을 줄이면서도 AI 성능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까지 모든 데이터센터를 100% 무탄소 에너지로 운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구글은 '24/7 무탄소 전력 사용'을 표방해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내내 재생에너지로 운영되는 데이터센터를 실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에너지 기업 ETF나 AI+인프라 결합형 성장주, 특히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와 관련된 천연가스 발전, 고효율 전력장비, 친환경 냉각 기술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는 NRG Energy, 넥스트라 에너지(NextEra Energy), 이튼(Eaton), 버티브(Vertiv) 등이 관련주로 자주 언급됩니다. 또한 엔비디아(Nvidia)나 슈퍼마이크로컴퓨터(Supermicro)와 같이 AI 서버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기업들도 함께 각광받고 있어, 데이터센터 산업은 기술, 에너지, 장비를 포괄하는 복합 투자 섹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국: 통제와 집약의 데이터센터 전략
중국 역시 데이터센터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동수서산(東數西算)’ 프로젝트를 통해 동부의 데이터 수요를 서부의 전력 여유 지역에서 처리하겠다는 전략을 추진 중입니다. 여기서 '동수서산'이란, 동쪽의 데이터(수요)를 서쪽에서 계산(연산)한다는 뜻으로, 베이징·상하이·광저우와 같은 동부 대도시권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트래픽을, 전력이 풍부하고 부지가 넓은 신장, 네이멍구(내몽골), 간쑤, 칭하이 등 서부 지역의 대형 데이터센터에서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지역은 땅값이 저렴하고, 냉각에도 유리한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어 경제적으로 효율적입니다. 단, 물류와 네트워크 연결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는 추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중국은 이러한 데이터센터들을 중앙정부 주도 하에 통합적으로 관리하며, 각 지역의 PUE(전력사용효율지수), 탄소배출량, 냉각 효율 등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데이터센터가 석탄 기반 화력발전소와 연결되어 운영되고 있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속도가 실제로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특히, AI 연산용 슈퍼컴퓨터급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전력은 기존 클라우드 인프라보다도 훨씬 많기 때문에, 태양광·풍력만으로 이들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는 아직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전략적으로 재생에너지와 데이터센터를 결합하는 ‘녹색 컴퓨팅 단지’ 구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리바바는 저장성과 신장 등에 수력과 태양광이 결합된 친환경 데이터센터를 구축 중이며, AI 모델 훈련 시 효율이 높은 알고리즘을 적용해 전력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 연구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텐센트는 텐진과 광둥 지역에 풍력 연계형 냉각 시스템을 도입한 스마트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고 있으며, 화웨이는 칩부터 서버, 클라우드까지 아우르는 ‘End-to-End 통합 에너지 최적화 솔루션’을 자사 기술로 구현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국가 차원의 디지털 주권 확보, 에너지 안보, 산업 자립이라는 중국 특유의 전략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앞으로 AI와 전력 사이의 균형을 기술적·정책적으로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중국의 지속가능한 데이터 경제를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수도권 편중과 지역 갈등, 그 사이의 전력 과제
한국도 AI와 클라우드 산업 성장에 발맞춰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형 데이터센터가 수도권(판교, 성남, 평촌, 용인 등)에 몰려 있고, 이로 인해 송전선 과부하, 전력망 불균형, 부동산 갈등 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력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초대형 전력 소비 시설이 집중되다 보니, 산업단지나 주거지 주변의 전기 품질 저하, 정전 우려가 불거지기도 합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주변 지역의 전기 공급이 불안정해진다는 우려가 제기되며, 실제로 충청권과 수도권 외곽 일부에서는 주민들이 '데이터센터 반대 대책위'를 구성해 전력 및 환경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도권 외곽 또는 지방 거점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분산 유치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세종, 전북 익산, 강원 홍천 등지에 ‘그린 데이터허브’ 시범단지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네트워크 지연(latency), 접근성, 숙련 인력 수급, 인프라 비용 등의 현실적인 이유로 수도권 선호를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금융·핀테크·AI 스타트업들이 밀집한 서울 및 판교 인근 지역은 클라우드 반응속도와 연산 안정성 면에서 물리적으로 가까운 인프라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수도권 집중을 강화하는 경향도 여전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전력은 2025년 이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기존 예측보다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전용 변전소 건설, 전력선 이중화, 수요 관리 시스템 확대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정부는 친환경 데이터센터 인증제도,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 대한 전력세 조정, RE100 기반 전력 거래제도(PPA)의 민간 확대 적용 등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역 전력·기후 목표와 데이터센터 유치 조건을 연계하려는 시도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SK텔레콤, KT클라우드, 네이버클라우드 등 국내 주요 ICT 기업들도 자체 AI 연산용 데이터센터를 설계하고 있으며, 특히 강원도 평창, 제주도 구좌읍, 전북 김제 등 친환경 잠재력이 높은 지역에 일부 시험적 시설을 추진 중입니다. 이들 시설은 풍력, 수력, 지열 등 지역 특화형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거나, 액체 냉각 방식(리퀴드 쿨링)과 같은 차세대 냉각 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중국처럼 에너지와 통신을 동시에 설계한 전략적 청사진은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한국의 데이터센터 정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단순한 입지 분산이 아니라, 에너지망과 정보망이 함께 최적화되는 구조적 설계와, 지역 사회와의 신뢰 구축을 전제로 한 장기 협력 모델이 함께 가는 ‘지속가능한 디지털 인프라 모델’로의 전환일 것입니다.
전기 먹는 하마를 넘어, 지속 가능한 AI 인프라를 위하여
AI와 데이터센터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 토지, 물, 탄소배출, 지역경제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인프라입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성능 좋은 AI”를 넘어, 얼마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가, 그리고 그 전력이 어디서 오며, 누구의 부담으로 작동하는가를 따져보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친환경 데이터센터로의 전환, 지역 수용성 확보, 전력망 분산, 그리고 기업의 책임 있는 에너지 전략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AI가 지속 가능하게 똑똑해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