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나라마다 다른 해석과 전략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 문제이지만,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국가마다 확연히 다릅니다. 각국의 경제 구조, 정치 체제, 산업 기반, 외교 전략에 따라 '기후정책'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으며, 그 방향과 우선순위, 실행 방식도 매우 다양합니다. 특히 중국, 유럽연합(EU), 미국은 세계 기후정책의 흐름을 좌우하는 세 핵심 주체로서 서로 다른 전략을 취해왔고, 이것은 한국과 같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기후위기를 '윤리적 책임'으로 보는 대표주자
유럽연합은 전통적으로 기후위기를 '윤리적 문제'로 접근하는 가장 강경한 진영입니다. 이미 1990년대부터 지속가능한 발전과 온실가스 감축을 중요한 정책 방향으로 설정해왔으며, 2005년에는 세계 최초로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는 등 선도적인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법제화했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최소 55% 이상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유럽 내로 수입되는 제품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추가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유럽 외 수출국에도 간접적인 온실가스 감축 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 ETS(탄소배출권 거래제):
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미리 정하고,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고파는 방식으로 유럽 내 배출 총량을 통제합니다. - 그린 택소노미:
녹색 경제활동의 기준을 정의해, 기업과 투자자가 '진짜 친환경' 사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가이드라인입니다.
EU는 기후문제를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 전체를 전환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특히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공식 정책 프레임으로 삼아, 노동자 보호, 에너지 빈곤층 지원, 지역사회 수용성을 함께 고려하는 다층적 접근을 강조합니다.
석탄 지역 폐광에 따라 일자리를 잃는 광산 노동자들을 위해 재교육 프로그램과 녹색 일자리 창출 지원이 병행되며,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 가구에는 난방비와 전기료를 직접 보조하는 제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히 탄소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모두가 함께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EU는 기후정의를 제도적으로 뿌리내리려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되며, 동시에 수출 국가들에는 새로운 규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산업 중심의 기후 전략, IRA 이후의 실용주의
미국은 오랫동안 기후협약에 소극적이었지만,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통과 이후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 법은 친환경 전환을 일자리 창출, 제조업 부활, 기술 주도권 확보와 같은 산업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며, 기후정책을 경제정책과 융합한 대표 사례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풍력 등 핵심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미국에서 만든 제품에만 혜택을 준다'는 조건을 붙여 기후를 명분으로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도덕적 명제보다 전략적 실용주의와 국가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연장선으로 해석될 수 있었으며,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접근을 좀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추진했던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 현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기후 정책의 우선순위를 다시 산업과 에너지 자립으로 명확히 옮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드릴 베이비 드릴'이라는 상징적인 구호 아래 화석연료 생산 확대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에너지 안보를 경제 안보의 중심으로 삼아 재생에너지 보조금 일부 축소와 함께 기후 관련 규제 완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IRA의 구조 자체는 의회에서 통과된 법이기 때문에 완전 폐지는 어렵지만, 보조금 집행 조건과 행정 우선순위 조정을 통해 친환경 전환의 속도를 늦추는 방식이 선택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일부 기후 관련 국제협력 의제를 유보하거나, 기후 대응보다 무역과 안보 이슈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외교 정책을 재편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 내 기후운동 진영과 주정부, 민간 기업들과의 정책 충돌을 야기하고 있으며,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의 기후 리더십 분산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중국: 세계 최대 배출국이자 신재생 강국이라는 이중적 얼굴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입니다. 동시에 세계 최대의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전기차 생산국이기도 합니다.
- 태양광 분야:
LONGi Green Energy(롱기그린에너지), JA Solar(징아솔라), Trina Solar(트리나솔라) 등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배터리 산업:
CATL(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 Limited)이 대표적인 기업으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와 함께 세계 3대 배터리 제조사 중 하나로 꼽히며, 한국 기업들과 협력하거나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 전기차 분야:
BYD(비야디), NIO(니오), XPeng(샤오펑) 등이 미국의 테슬라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특히 BYD는 2024년을 기준으로 전기차 판매량에서 테슬라를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 기업 중 일부는 한국에도 진출하거나 협력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예컨대 CATL은 국내 배터리 소재업체들과 기술 협력 및 원재료 수급 계약을 맺은 바 있으며, BYD는 전기버스와 택시 부문에서 한국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 내 소비자 정서나 산업 보호 정책 등의 장벽도 있어 본격적인 대규모 진출은 제한적인 편입니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정점,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구체적인 감축 로드맵이나 외부 감시 메커니즘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은 기후위기 대응을 주로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석탄 발전소를 줄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막대한 규모로 태양광과 풍력 단지를 조성하고 있으며, 핵심 기술과 제조 기반을 자국 중심으로 통제하려는 움직임도 강합니다. 최근 미국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후 외교마저도 지정학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세 나라의 공통점과 차이점, 대한민국의 선택지는?
세 나라 모두 기후위기를 단지 환경 문제가 아닌 경제·산업·지정학의 핵심 이슈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EU는 '윤리와 규범', 미국은 '전략과 산업', 중국은 '안보와 통제'라는 서로 다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정책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처럼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는 이들 세 축의 정책에 따라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EU는 탄소 국경세로 수출입에 규제를 가하고 있고, 미국은 자국 중심 보조금 정책으로 공급망을 압박하고 있으며, 중국은 주요 원자재와 부품 공급을 쥐고 있어 기후와 무역이 얽힌 삼중 구조 속에서 복합적인 대응 전략이 필수입니다.
이제 기후정책은 '따라갈 것인가, 선도할 것인가'의 선택이 아니라, 어떻게 균형 있게 협력하고, 동시에 주체적으로 나아갈 것인가의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국제 사회에서 신뢰받는 파트너이자 유연한 조정자로서의 입지를 확립하는 것, 그것이 한국이 앞으로 기후정의와 산업경쟁력을 함께 실현해나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