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는 무슨 법이고, 왜 갑자기 중요한가요?
IRA(Inflation Reduction Act)는 2022년 8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서 통과시킨 대규모 법안으로, 원래 이름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지만, 사실상 기후 변화 대응과 에너지 산업 전환을 핵심 목표로 하고 있는 법안입니다.
명목상으로는 물가 상승률을 낮추고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경제법안이지만, 그 안에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친환경 에너지 투자 예산(총 3,690억 달러 규모)가 포함되어 있어, 사실상 '기후법'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탄소중립 전환의 실질적 이정표가 된 법안입니다.
이 법은 미국 내 청정에너지 생산, 전기차 보급, 에너지 효율 향상, 탄소포집 기술 개발, 농업 탄소 감축 등에 대해 정부가 세금 혜택과 보조금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거나 전기차를 구입할 경우, 정부가 일정 금액을 보조해주거나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식입니다. 이로써 기업과 소비자 모두 친환경 제품을 선택할 유인을 갖게 되고, 시장 전체가 탄소중립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특히 IRA의 핵심 조항 중 하나는, 이러한 혜택이 미국 내에서 생산되거나 조립된 제품에 한해 적용된다는 조건입니다. 즉, 외국에서 만든 부품이나 차량에는 해당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는 자국 내 생산과 고용을 촉진하고, 에너지와 기술 분야의 공급망을 국내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 하나만으로도 글로벌 산업 지형, 특히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 재생에너지 부문에서 매우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 기업들에겐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산업의 지형이 바뀌었다
IRA 통과 이후, 미국 내에서 전기차를 구입할 때 받을 수 있는 세액 공제 조건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제조 국가와 상관없이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세액 공제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미국 내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만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조항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과 동시에, 전기차 생산의 '미국 본토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리튬, 니켈, 희토류 등)의 경우, 중국이 아닌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에서 생산·가공된 원료를 써야 보조금 대상이 됩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는 전기차 모터, 풍력 터빈, 반도체, 정밀 센서 등 현대 첨단 기술 산업에 꼭 필요한 소재입니다. 대표적인 희토류로는 네오디뮴(Neodymium), 디스프로슘(Dysprosium), 프라세오디뮴(Praseodymium) 등이 있으며, 이들은 작지만 강한 자석을 만들어내는 데 필수적입니다.
문제는 전 세계 희토류 공급의 70% 이상을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인데, 최근 미국과 중국 간의 관세 및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 매우 큰 위협이 되며, 동시에 그동안 자국은 중국산 희토류를 사용해놓고도, 동맹국에게는 '중국산 사용 금지'라는 이중 기준을 적용해온 셈이기도 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캐나다, 호주 등 희토류 생산 능력을 가진 국가들이 주목받고 있고, 한국 기업들도 IRA를 기회 삼아 미국 내에 공장을 세우거나, 미국에서 가공된 희토류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이런 '자국 중심' 정책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과 공급망 재구성이라는 도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다시 강경한 관세정책을 펼치고 있는 현재,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동시에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셈입니다.
대한민국의 기업과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IRA는 한국 기업들에게 일종의 도전이자 기회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은 IRA에 맞춰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거나, 미국 자동차 기업과의 합작 투자로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수출'을 넘어 '미국 내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로 산업 전략을 전환해야 하는 현실을 의미합니다.
반면, 이 과정에서 미국 외 국가에서 제조된 부품이나 소재를 쓰는 기업들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급망 전체를 재편해야 한다는 압박도 함께 따릅니다. 실제로 어떤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차량 소프트웨어를 미국 서버로 이관하거나, 배터리 셀의 일부를 현지 조립 방식으로 바꾸는 등의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IRA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전기차를 구입하는 일반 시민은 최대 7,500달러의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차량 선택 기준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동시에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제품이 더 많은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장 경쟁의 변화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탄소중립과 산업정책이 연결된다는 것의 의미
IRA는 단순한 환경법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전략을 연결하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미국은 이 법을 통해 친환경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며, 기술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략은 단순히 미국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의 생산·소비 체계와 투자 흐름까지 바꾸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기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이전 임기에서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라는 구호 아래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을 대폭 확대했고,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단행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만약 그가 다시 유사한 정책을 추진한다면, 미국은 청정에너지 확대보다는 전통 화석연료 산업을 부활시키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회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그 사이에 많은 주(州)정부와 민간 기업들이 이미 IRA 기반의 친환경 산업 투자를 진행해온 만큼, 연방정부의 정책 변화가 곧바로 완전한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도 친환경 정책과 전통 에너지 회귀 사이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역시 이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미국과의 공급망 협력, 탄소 저감 기술 개발, R&D 투자 확대 등을 통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IRA는 우리에게 '탄소중립'이라는 윤리적 과제와 함께, 국가 경제 전략으로서의 기후 대응이 얼마나 중요해졌는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시장 전체의 방향성도 다시 한 번 흔들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국가의 정책 변화에 따라 좌우되지 않도록, 더 다각적이고 유연한 전략을 갖춘 에너지·기후 대응 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