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는 왜 '석유'와 연결되는가?
미국의 텍사스(Texas)주는 흔히 '석유의 땅'으로 불립니다. 단지 산유량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에너지 산업의 뿌리이자 현재까지도 가장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텍사스는 원래부터 미국의 영토였던 것이 아닙니다. 19세기 초반까지 이 지역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이후 멕시코의 영토가 되었으며, 1836년에는 '텍사스 공화국'이라는 독립 국가로 잠시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군사적 자립이 어려웠던 텍사스는 1845년 미국에 스스로 편입을 요청했고, 결국 미국의 28번째 주가 되었습니다. 이는 멕시코와의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미국은 현재의 서부 영토 대부분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텍사스는 미국의 팽창주의와 지정학적 전략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에도 전략적 에너지 자원지로 빠르게 부상하게 됩니다.
텍사스에서 석유가 처음 상업적으로 채굴된 것은 1901년, 스핀들탑(Spindletop)이라는 유전에서였고, 이때부터 미국은 본격적인 석유 시대를 열게 됩니다. 이후 텍사스는 석유 생산, 정제, 운송, 수출, 석유화학 공업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석유 벨트를 구축하며, 미국 에너지 경제의 중추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텍사스는 미국 전체 원유 생산의 약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최대의 정유시설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출항도 텍사스에 위치해 있습니다. 'WTI(서부텍사스산 중질유, West Texas Intermediate)'는 국제 유가의 기준점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텍사스가 국제 석유시장에서 갖는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WTI는 미국 텍사스 내 주요 유전에서 생산되는 고품질의 원유로, 가볍고(즉, 밀도가 낮고), 황 함량이 적어 정제 효율이 매우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WTI는 휘발유와 디젤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이 수월하고, 품질 측면에서 '스위트 크루드(Sweet Crude)'로 분류됩니다.
WTI는 주로 미국 내에서 소비되고는 있지만,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선물시장 덕분에 국제 유가의 대표 지표로 자리잡았습니다. 브렌트유(Brent)와 함께 세계 원유 시장의 가격을 형성하는 두 축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는 단지 생산량이 아니라 시장 접근성과 투명성, 품질 표준을 기반으로 한 평가이기도 합니다.
에너지만이 아니다: 텍사스를 이해하려면 '정치'를 봐야 한다
텍사스는 정치적으로도 미국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는 주입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를 보이는 보수 성향의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랜 기간 동안 공화당 소속 주지사와 상하원의원이 지배적인 입지를 유지해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텍사스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았으며, 2016년과 2020년 대선 모두 텍사스에서 승리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텍사스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이슈들, 예를 들어 총기 소지 권리, 낮은 세금, 규제 완화, 이민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너지 산업에 대한 자유로운 정책 환경이 있습니다. 총기 소지 권리는 텍사스에서 '개인의 생존권과 자유'와 직결된 문제로 여겨지며, 많은 주민들이 실제로 총기를 일상적으로 소지하고 있습니다. 또, 이민 문제는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지리적 특성상 불법 이민자 유입 문제와 직결되어 있어, 연방정부보다 더 강력한 통제를 요구하는 주 내 여론이 강합니다.
에너지와 관련해서도 텍사스는 미국 내 다른 주들보다 환경 규제나 세금 측면에서 에너지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영향평가가 간소화되어 사업 허가 절차가 빠르고, 원유나 가스 시추에 대한 세금 인센티브도 많은 편입니다.
이는 엑슨모빌, 셰브런 같은 글로벌 에너지 기업뿐 아니라 수많은 중소 에너지 기업들이 본사를 텍사스에 두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텍사스는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정치적 성향과 경제 정책이 함께 형성되어온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민주당이 점점 텍사스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하고, 특히 에너지, 국방, 이민, 헌법 권리 같은 이슈에서는 강경 보수적 입장이 우세합니다. 예를 들어 2024년 기준, 텍사스주는 연방 정부의 이민 정책과 총기 규제 정책에 대해 주 정부 차원에서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제 환경 문제 앞에서 텍사스는 어떤 입장인가?
텍사스는 미국의 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은 주 중 하나입니다. 이는 높은 산업 활동량, 석유·가스 중심의 에너지 구조, 자동차 중심의 교통 시스템 등 복합적 요인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사스는 환경 규제보다는 에너지 산업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정치적인 보수성 때문이 아니라, 텍사스의 생계와 고용, 세수 구조 대부분이 에너지 산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환경을 보호하는 정책이 곧 지역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구조인 것입니다. 텍사스에서 환경 관련 규제에 대한 반발이 큰 이유는, 현실적으로 탄소세 도입이나 시추 제한 조치가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텍사스 내에서도 일부 대도시(오스틴, 휴스턴 등)를 중심으로 재생에너지나 탄소중립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는 있지만, 주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전통 에너지 중심의 경제 모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텍사스는 풍력 발전 설치 용량 기준으로 미국 1위이지만, 이는 주로 전력공급 다변화를 위한 실용적 선택으로 해석되며, 기후변화 대응보다는 에너지 수급 안정성과 경제성 중심의 접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텍사스를 이해하면 미국 에너지와 정치가 보인다
텍사스는 미국 안에서 단순한 한 지역을 넘어서, 미국 에너지 정책과 정치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석유와 천연가스, 규제 완화와 자유시장주의, 총기 소지와 보수주의, 이 모든 키워드들이 텍사스라는 이름 아래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외칠 때, 가장 먼저 호응한 주 중 하나가 텍사스였고, 미국이 국제적 환경 논의에서 거리를 둘 때 가장 강하게 경제논리를 내세운 곳 역시 텍사스였습니다. 앞으로 미국이 어떤 에너지 전략을 택하든, 텍사스는 단순한 생산지가 아니라, 정책의 방향성과 정치적 전선이 교차하는 전략적 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