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진짜 목표는 '중국 고립'일까, '자유무역 재편'일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진하는 관세 정책은 단순히 무역 불균형을 조정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표면적인 명분일 뿐, 실제로는 글로벌 경제 질서 자체를 새롭게 짜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은 왜 굳이 세계 각국과 무역 관계를 흔들어가면서까지, 중국을 겨냥한 조치를 단행하는가?" 이는 단순히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차원을 넘어, 누가 미래 글로벌 질서의 중심이 될 것인가를 둘러싼 '패권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자유무역'이라는 말을 쓰되 그 안에 미국 중심의 재편된 블록 무역을 의도하고 있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즉, 무조건적인 개방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 국가들과만 안정된 무역망을 유지하고, 중국과는 구조적으로 분리된 경제 구도를 형성하려 한다는 것이죠.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까지 차단하는 '백도어 전략'
이 전략의 한 축은 바로 백도어(Backdoor) 차단 전략입니다. 여기서 '백도어'란 본래 보안 용어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정식 루트를 거치지 않고 몰래 시스템에 접근하는 우회 경로를 뜻합니다. 이를 무역에 적용하면, 어떤 국가가 제재나 관세 등의 규제를 피해 제3국을 경유해 간접적으로 제품을 수출입하는 경로를 의미합니다.
이 전략은 중국이 미국과 직접 거래하지 않고, 멕시코·베트남·싱가포르·캐나다 등 제3국을 활용해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 기업이 베트남에 위장 공장을 설립한 뒤, 중국산 부품을 조립해 '메이드 인 베트남'으로 둔갑시켜 미국에 수출한다면, 이는 표면적으로는 베트남산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산에 가깝습니다. 미국은 이 같은 경우를 단속하기 위해 해당 제품을 중국산으로 간주하고,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적용하거나 수입 자체를 제한하려 합니다.
이러한 우회 전략을 차단하기 위한 감시와 규제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으며, 통관 기준의 엄격한 적용과 원산지 증빙 자료 요구 강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 기업들은 단순히 조립만 다른 나라에서 하는 방식으로는 미국 시장 진입이 어려워지고, 실제 생산 가치가 어디에서 창출되었는지까지 투명하게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중국을 향한 압박에 그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판을 다시 짜려는 시도이며, 미국 중심의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합니다. 이와 관련된 개념이 바로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과 '얼라이드쇼어링(Allied-shoring)'입니다.
프렌드쇼어링은 정치·안보적으로 믿을 수 있는 국가들과만 공급망을 연결하겠다는 의미이고, 얼라이드쇼어링은 군사·경제 동맹을 맺은 우방국 중심으로 무역 네트워크를 재편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결국 이 전략은 단순한 관세 전쟁의 수단을 넘어,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하여 미국의 경제안보를 강화하고 중국의 기술 확장을 견제하는 구조적 시도로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현실적 외교 스탠스
이 시점에서 한국은 중대한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을 기술과 안보에서 모두 중요한 파트너로 간주하면서, 반도체, 배터리, AI 등 전략 산업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반면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며, 특히 중간재와 소비재 수출의 주요 시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단순한 줄서기식 외교가 아니라, 지정학적 실용주의(Geo-economic Pragmatism)에 기반한 유연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줄서기식 외교'란 특정 강대국의 편에 일방적으로 서는 외교 방식으로, 자율성과 독립성을 희생하면서 편의적으로 외교적 노선을 택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명확한 보상을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자국의 외교 역량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지정학적 실용주의'는 이념보다 현실, 감정보다 이해관계를 중심에 두고 외교 전략을 수립하는 접근입니다. 즉, 국제 정세의 복잡성과 자국의 경제적·전략적 이익을 동시에 고려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고 다자적 연대를 강화하려는 실용적 태도를 말합니다.
이는 다음 세 가지 방향에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 핵심 기술 분야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일방적 배제를 피하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접근
- 무역 다변화를 통해 동남아, 인도, 중동 등 제3시장을 적극 개척하여, 미중 사이의 리스크를 분산
- 국제 통상 규범에 충실한 중견국 외교를 통해, 글로벌 질서 재편 속에서 한국의 정당성과 신뢰를 확보
한국은 지정학의 변방이 아니라, 균형자의 자리로
앞으로 펼쳐질 글로벌 신질서는 과거처럼 단극(미국 중심)이나 양극(미중 경쟁) 구도로만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기술, 통화, 안보, 가치 체계 등 다양한 축에서 다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며, 한국처럼 기술력, 산업기반, 외교역량을 고루 갖춘 중견국가는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강대국 사이에서 수동적으로 줄을 서는 전략이 외교의 현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은 더 이상 국제 질서의 주변부에 머물 수 없는 위치에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과 안보 동맹, 기술 표준, 디지털 질서 형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능동적인 선택과 조율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한국이 취할 전략은 단순한 친미 혹은 친중이 아니라, 전략적 동맹을 유지하되 유연한 실용주의를 견지하는 길입니다. 동맹은 지키되, 결정은 한국의 주권 아래 내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때로는 강대국의 불편한 시선을 감수하면서도, 국내 산업과 국민의 미래를 우선순위에 두는 실질적 선택을 의미합니다.
위기와 기회는 언제나 함께 옵니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초래한 질서 재편은, 한국에게도 새로운 좌표를 설정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의 파도가 거셀수록, 중심을 잡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곧 국가의 힘이 되는 시대입니다. 한국은 그 중심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교의 철학과 실행의 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