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리쇼어링 전략, 자동화와 만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중국 고율 관세 정책은 단순히 수입품 가격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미국 내 제조업을 부활시키기 위한 더 큰 그림 속에서 실행된 전략입니다.
사실 미국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조업 국가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철강, 자동차, 기계 산업은 전 세계 공급망의 중심이었고, 1960~70년대까지는 '메이드 인 USA'가 세계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값싼 인건비와 낮은 환경 규제를 찾아 미국 기업들은 제조 공장을 해외로 옮기기 시작했고, 이 현상은 '오프쇼어링(Offshoring)'이라 불렸습니다.
특히 NAFTA 체결(1994년)과 중국의 WTO 가입(2001년)은 제조업 탈미국화에 속도를 붙였습니다. 이 결과 디트로이트 같은 전통 제조업 도시들은 공동화(空洞化)되었고, 미국 내 중산층 일자리도 급감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가 수백만 개 이상 줄어들며 사회적 양극화와 정치적 불만이 확산되었고, 이 위기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구호와 리쇼어링 정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관세는 단기적으로는 중국 제품을 비싸게 만들고,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기지의 부활(리쇼어링)을 유도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노동 비용과 환경 규제가 여전히 높다는 점. 여기에 등장한 해법이 바로 AI와 로봇을 활용한 스마트 자동화 공장입니다.
과거처럼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로 공장을 이전하는 대신, 첨단 자동화 시스템으로 제조 경쟁력을 회복하자는 것이 트럼프식 제조업 전략의 핵심입니다. 이 전략은 단순한 보호무역이 아니라, 기술 기반의 산업 재편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리쇼어링은 얼마나 진척되었을까요?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으로 돌아온 제조업 일자리는 약 35만 개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애플, 인텔, 테슬라 등의 일부 기업은 반도체나 핵심 부품 생산라인의 미국 회귀를 선언했으며, 바이든 행정부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해 리쇼어링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직 전체 제조 생태계 회복에는 갈 길이 멀지만, 변화의 방향은 분명히 리쇼어링 강화 쪽으로 흐르고 있는 중입니다.
미국형 스마트 팩토리: 가능성과 한계
미국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를 제조업에 접목하면, 과거처럼 수많은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생산성과 품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동합니다.
이미 전기차 기업 테슬라(Tesla)는 네바다와 텍사스에 대규모 기가팩토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공장들은 단순 조립을 넘어 AI 기반 생산 최적화 시스템과 로봇팔 기반 생산 라인을 도입해 운영 효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또 아마존(Amazon)은 물류창고에서 수만 대의 키바 로봇을 활용해 완전 자동화를 점진적으로 구현 중입니다.
그러나 이런 전략에는 명확한 한계도 존재합니다.
- 첫째, 첨단 기술 기반의 자동화 공장은 초기 투자비가 매우 크고, 기술 확보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 둘째, AI나 로봇이 모든 공정을 대체하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기술직 인력 부족 문제가 더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 셋째, 중소기업이나 전통 제조업체는 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 산업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결국, 미국식 스마트 팩토리는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단기간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해법은 아니라는 점에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중국의 기술 도약과 BYD의 약진
한편, 중국 역시 이러한 리쇼어링 및 기술 자동화 경쟁에서 결코 뒤처져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전기차 기업 BYD입니다. BYD는 배터리, 모터, 전장 시스템을 모두 자사 기술로 통합하며, 테슬라의 주요 경쟁자로 부상했습니다.
특히 이 회사는 생산 공정의 수직 통합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중국 내 공장에서는 자체 개발한 자동화 로봇과 AI 시스템을 활용한 효율적인 생산 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구간에서는 이미 생산량, 원가 효율, 내수시장 장악력에서 테슬라를 넘어섰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2024년 말 기준, BYD는 유럽과 동남아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으며, 자율주행 기술과 로봇 생산 라인 또한 꾸준히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동남아 지역에서는 일부 국가의 정부와 직접 협력하여 조립공장을 설립하고 있으며, 전기버스, 상용차 등 B2G 중심의 납품도 확장 중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BYD는 AI 기반 설계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시뮬레이션을 통한 제품 개발 속도 단축, 데이터 기반 품질 관리 등 첨단 기술 내재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진화는 단순히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 글로벌 기술표준 경쟁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습니다.
또한 중국 정부는 2025년부터 전국 초등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AI 기초 교육을 의무화한다고 발표하며, 인공지능 인력 양성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방 교육청 단위로 시범 운영되었던 프로그램을 전국 단위로 확대하는 정책적 결정으로, 장기적으로 기술 자립도와 혁신 기반을 공교육 차원에서 다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시스템적 대응은 중국식 기술굴기의 일환으로 평가되며, 단순히 '싼 인건비'로 승부하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입니다. 오늘날의 중국은 로봇, 반도체, 전기차, 클라우드 컴퓨팅 등 다방면에서 자국 기술을 중심으로 한 고도화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산업전략이 아닌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기술력은 양국 모두 인정, 차이는 구조에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기술력에서 세계 상위권이며, 자국 산업을 자동화와 첨단화로 전환하고자 하는 의지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접근 방식에는 구조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미국은 민간 중심의 혁신과 자율 경쟁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에 방점을 두고 있으며, 시장 원리에 기반한 자본 배분이 특징입니다. 정부는 방향을 제시할 뿐, 실제 기술 개발과 상업화는 대부분 기업의 손에 맡겨져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의 산업 계획과 인프라 투자, 교육 제도와 연계된 장기 전략을 통해 기술 발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기술 산업의 모든 단계에 깊숙이 개입하며, 전략적 산업에 대한 자금, 인력, 정책을 집중적으로 배분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적 차이는 양국 기술의 성격에도 영향을 줍니다. 예컨대 미국은 일론 머스크(Elon Musk),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와 같은 기업가 주도의 '비전형 혁신'이 돋보입니다. 이들은 자본과 기술을 민간에서 융합시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능력을 갖췄으며,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같은 분야에서는 정부보다 앞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화웨이(Huawei), BYD, 텐센트(Tencent) 등 국가와 밀접하게 연결된 기업 구조를 통해 계획적 확장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산업 로드맵에 따라 R&D와 생산을 배치하며, 내수 기반을 발판 삼아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단지 '누가 기술이 더 뛰어난가'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스템이 더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기술 발전을 유도하는가를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관점이 됩니다. 한국과 같은 중견 기술 국가에 있어 이 구조적 이해는 더욱 중요합니다. 자국의 민간 혁신 능력과 정부 조정력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미래 기술 주권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