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의 부상과 비교우위론의 종말, 그리고 다가오는 경제 냉전의 징후들
2025년, 세계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미국의 전방위적 관세 조치가 촉발한 이번 무역 갈등은 단순한 관세율 조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20세기 후반 이래로 유지되어온 '자유무역(global free trade)' 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며, 동시에 새로운 경제 질서의 태동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브릭스(BRICS)를 포함한 신흥 경제권들은 기존 G7 중심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며 점점 더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사이에는 신냉전적인 블록 형성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비교우위론이라는 고전 경제학 이론조차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각국은 이념보다는 생존을 위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자유무역의 이념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자유무역은 기본적으로 "각 나라는 자국이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다른 나라는 그 물건을 수입함으로써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다"는 원칙에 기반을 둡니다. 이 개념은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 Theory)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A 나라는 포도 생산에 능하고 B 나라는 옷 생산에 능하다면, 두 나라는 각자 자국이 잘하는 제품을 생산한 뒤 서로 교환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세계화의 근간이 되었고, 각국이 특화된 산업을 중심으로 세계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특히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 기업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 결과 미국 국내의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는 '산업공동화(deindustrialization)'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중서부 지역 노동자들의 분노는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고, 자유무역이 미국 중산층을 무너뜨렸다는 인식이 퍼지며 보호무역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습니다. 이는 곧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상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내세운 고율 상호관세는 단순한 경제 조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은 더 이상 무역에서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정치적 메시지이자, 자유무역이라는 이상이 실제 경제적 불균형을 야기할 수 있음을 공공연히 인정한 조치였습니다. 이는 국제 무역 체제가 조정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브릭스의 반격: 다극화되는 세계경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신흥국 연합이 아닙니다. 이들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집트, 아르헨티나 등을 새롭게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며 브릭스 플러스(BRICS+)라는 확장된 형태로 재편되고 있고, 석유, 원자재, 식량 등 전략 자원의 통제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 주도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며, 공동통화 발행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브릭스 국가 간 무역에서 자국통화 결제 비율을 높이는 움직임도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동시에 미국의 금융 제재 효과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 국가들과의 경제협력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인도는 인도양-중동-유럽 경제 회랑(IMEC)에 대한 독자적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경제 냉전: 협력의 시대에서 진영의 시대로
오늘날의 무역 질서는 점점 더 '협력'보다는 '진영'의 논리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반도체·배터리·희토류 등 핵심 전략 물자에 대해 공급망을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국산화율 제고'를 통해 외부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은 '지역화(regionalization)', '블록화(blockization)',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지역화(regionalization)
지역화는 자국 또는 가까운 국가들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성하는 흐름입니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멕시코와 캐나다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나, 유럽연합이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유럽 내부로 집중시키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는 지리적 인접성, 물류 안정성, 정치적 신뢰를 우선시하는 전략으로, 기존의 전 지구적 생산체계에서 지역 중심의 체계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블록화(blockization)
블록화는 특정 국가 그룹이 무역, 기술, 금융 등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경제 블록을 형성하는 흐름입니다. 미국·EU·일본 등 서방국가들의 반도체 동맹, 그리고 브릭스+ 국가들이 자국 통화로 원자재를 결제하는 시도는 각각 경제 블록화를 대표하는 사례입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이 점점 정치적 동맹과 전략적 가치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셔널리즘(nationalism)
내셔널리즘은 자국 중심의 산업 보호와 공급망 강화 전략을 의미합니다. 중국의 "국산화율 70% 달성" 전략,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기술·자원·식량 등의 핵심 분야를 타국 의존 없이 자급자족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한때 '글로벌 밸류 체인(Global Value Chain, GVC)'은 한 제품이 여러 나라에서 분업 생산되는 자유무역 체제의 상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스마트폰이 한국에서 설계되고, 일본에서 부품을 만들며, 중국에서 조립되어, 미국에서 판매되는 구조가 GVC의 전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복잡한 연결망은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고, 각국은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를 이유로 자국 중심 공급망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경제 안보란, 외교나 군사적 충돌 없이도 경제적 의존관계를 무기화할 수 있는 시대에, 자국의 전략적 자립성을 확보하려는 국가적 전략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지 경제 구조의 변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각국의 외교 정책, 국방 전략, 기술 투자, 교육 정책까지도 경제 블록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5G,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우주항공 등 모든 분야에 확산되며, 일종의 경제 냉전이라는 말이 더는 과장이 아닙니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경제 지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자유무역은 더 이상 보편적인 해법이 아니며, 각국은 이제 생존을 위해 '함께할 사람'과 '거리 둘 사람'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전략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삼성과 같은 초국적 기업, 정부, 그리고 개별 투자자들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일까요?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복잡한 세계 경제의 변화 속에서, 한국이 어떤 통상 전략과 외교적 입지를 가져가야 할지, 그리고 수출 구조와 환율 리스크 속에서 어떤 정책적·제도적 방향을 모색해야 할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삼성과 같은 글로벌 기업, 그리고 정부와 국민들이 직면한 과제를 함께 분석하며, 자립적 경제 구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이 시리즈가 여러분의 시야를 넓히고, 복잡한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 글도 꼭 함께해 주세요. 구독해주시면 더 깊이 있는 콘텐츠를 계속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