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넘어선 권력의 도구, 그리고 글로벌 경제를 움직이는 열쇠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듣는 '관세(Tariff)'는 단순히 국경을 넘는 물건에 붙는 세금이 아닙니다. 관세는 국가의 경제 주권, 산업 보호, 때로는 외교적 무기 역할까지 하는 복합적인 도구입니다. 이 글에서는 관세의 개념부터 시작해 역사적 흐름, 경제학 이론, 그리고 21세기 무역 분쟁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이유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관세의 기초 개념: 무엇에 왜 매기는가?
관세는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입니다. 목적은 다양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경우에는 단순한 재정 수입을 위해, 또 어떤 경우에는 외국과의 무역에서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 미국이 외국산 철강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면, 이는 자국 철강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정책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외국 기업은 미국 시장에 물건을 팔기 위해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이는 무역 협상에서의 지렛대 역할도 하게 됩니다.
관세의 기원: 고대부터 제국까지
관세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고대 도시국가들에서는 도시 간 상거래에 일정한 통행세나 통상세를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유럽의 상인들은 성문을 통과할 때 세금을 냈으며, 이는 성주나 왕의 중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관세는 점점 '국가의 산업 보호'라는 명확한 목적을 갖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정책입니다. 그는 미국의 초기 산업이 유럽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호무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이를 통해 초기 산업 기반을 키웠습니다.
해밀턴은 1791년 「제조업 보고서」에서 미국이 유럽의 값싼 공산품에 시장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정 기간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고,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후에 '유치산업 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이라는 이론으로 정립되며, 산업화 초기 국가들의 경제 전략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이론은 아직 규모가 작고 경쟁력이 약한 자국 산업은 외국과의 자유경쟁 속에서는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는 정부가 관세나 보조금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도 이 이론을 지지하며 독일 통일 이전의 분열된 국가들이 영국과 같은 강대국과 경쟁하기 위해 보호무역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유치산업 보호론은 단순한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미국, 독일, 일본, 대한민국 등 다양한 국가들이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채택했던 현실적 전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끝나지 않는 논쟁
18세기 후반,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필두로 자유무역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는 무역에 개입하지 않고,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해야 부의 축적이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이후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론'은 국가 간 무역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처럼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1930년 미국에서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입니다. 당시 미국은 1929년 대공황이라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보호무역 강화가 제안되었습니다. 상원의원 리드 스무트(Reed Smoot)와 하원의원 윌리스 홀리(Willis C. Hawley)가 공동 발의한 이 법은 약 20,000개가 넘는 수입품에 대해 평균 40%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처음에는 농업 보호를 명분으로 시작되었지만, 법안 통과 과정에서 산업계의 이해가 얽히면서 대부분의 공산품에도 관세가 적용되었고, 그 결과 미국 내 소비자 가격 상승과 해외 수출 감소라는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더욱이 이에 대한 반발로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 주요 무역 상대국들이 보복 관세를 시행하며 세계적인 무역 위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법은 세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으며, 세계무역량은 1930년대 초반 몇 년 사이에 50% 이상 급감했습니다. 일부 경제사학자들은 이 조치가 대공황을 더욱 장기화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등장할 때에도 종종 이 법이 비유적으로 언급되며,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되풀이된다"는 경고의 사례로 인용되곤 합니다.
20세기 후반: 관세 장벽의 해체와 WTO의 등장
2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국가들은 다시는 무역전쟁과 보호주의가 세계 경제를 위협하지 않도록 국제 협력체계를 구축했습니다.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1947년)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World Trade Organization)의 창설로 이어지며, 전 세계적인 자유무역 체제를 구축해왔습니다.
이 시기에는 관세를 낮추고, 국가 간 무역장벽을 줄이는 방향으로 협상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했고, 관세보다는 비관세장벽(기술규제, 보조금 등)이 논쟁의 중심으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21세기: 다시 관세가 돌아왔다
하지만 2018년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과 함께, 관세는 다시 전면 무대에 등장하게 됩니다. 중국, 유럽연합, 심지어 동맹국인 대한민국과 일본에도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었고, 이는 세계무역기구의 권위에도 도전장을 내민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트럼프가 재집권하며 다시 한 번 전 세계를 향해 상호관세(Mutual Tariff) 전략을 선언함으로써, 관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닌, 지정학과 권력의 도구로 부상했습니다. 특히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활용하여 의회의 동의 없이 관세를 실행하는 방식은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WTO 체제의 무력화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관세는 이제 단순한 경제적 계산이 아닌, 글로벌 권력구조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5년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Mutual Tariff)라는 새로운 형태의 무역정책을 본격화하며, 관세를 외교 및 안보 전략의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의 경제 민족주의 노선과,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활용한 강경한 행정 조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이 '상호관세'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존의 자유무역 원칙과 어떻게 충돌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미국과 세계 경제에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