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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과 행정명령은 왜 반복될까? 미국 정치의 견제 메커니즘

by 업타운 위너 2025. 4. 4.

대통령과 의회가 벌이는 견제의 실제 사례들

 

미국은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의 원칙에 따라 세 권력 기관—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서로를 감시하고 제한하도록 설계된 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대통령(행정부)과 의회(입법부) 간의 긴장은 정책 결정의 과정에서 가장 자주 드러나며, 때로는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셧다운(Government Shutdown)이라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셧다운'이란,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안이 기한 내에 통과되지 않아 정부 기관들의 운영 자금이 끊기는 상황을 말합니다. 예산이 없으니 공공기관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게 되고, 정부 직원들 중 필수 인력을 제외한 대다수가 무급휴직에 들어갑니다. 국립공원, 연방 박물관, 일부 공항 보안, 식품안전 관련 점검, 이민 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가 지연되거나 중단되며, 국가 기능의 일부가 사실상 '멈추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편, 국회의원들과 그들의 보좌진은 헌법상 급여가 보장되어 있어 예산과 무관하게 계속해서 업무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작 책임 있는 사람들은 계속 일하고, 일반 공무원과 국민만 피해를 본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많은 한국 독자분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셧다운 기간 동안 미국 국회의원들이 국회 건물에서 '먹고 자고' 하며 농성을 벌이느냐는 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연방의회에서는 한국 정치에서 종종 보이는 물리적 점거 농성 같은 형태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워싱턴 D.C.나 지역구에 마련된 숙소에서 생활하며, 셧다운 기간에도 협상, 언론 인터뷰, 유권자 대상 메시지 전달 등 다양한 정치 활동을 이어갑니다.

 

셧다운 중이라 해도 의회는 계속 열릴 수 있고, 관련 예산안 협상을 위한 공식 회의도 진행됩니다. 정치적 공방은 뜨겁게 벌어지지만, 그것이 물리적 농성이나 점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문화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이 글에서는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의회와 충돌했던 사례들, 예산안 협상과 부채한도 협상의 정치적 뒷이야기, 외교정책을 둘러싼 갈등까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왜 미국 정치가 '갈등과 조율'의 반복으로 움직이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행정명령, 셧다운, 부채한도 협상 등 실제 사례를 통해 미국 정치의 견제 구조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업타운 위너스 블로그 글 썸네일 이미지 입니다.
셧다운과 행정명령, 그 이면의 힘겨루기 - 캔바 프리미엄, 업타운 위너스 이미지 제공

 

 

행정명령과 의회의 충돌: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입법 없이도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행정 집행 권한에 근거한 것이지만, 입법 권한을 넘어서는 경우에는 의회나 사법부의 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의회의 반대 속에서도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DACA)를 행정명령으로 시행했습니다. 이는 수많은 이민자 청년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정책이었지만,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에서는 이를 우회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실제로 이후 대통령이 바뀌자 이 정책은 쉽게 폐지 위기에 놓였고, 결국 대법원에서 합헌 여부를 두고 오랜 법정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당시, 취임 직후 무슬림 국가 출신자들의 입국을 제한하는 이른바 '이슬람 입국 금지령'을 행정명령으로 발동했습니다. 이 조치는 미국 안보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시민단체들과 인권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여러 주 법원에서 위헌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몇 차례 행정명령 내용을 수정하며 끝내 대법원의 조건부 인정을 받아냈지만, 그 과정에서 대통령 권한의 한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깊어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정 복귀, 연방 부동산 퇴거 유예, 백신 의무화 지침 등 다양한 행정명령을 발효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는 예산권과 관련된 사안이거나 사적 권리 침해 논란이 있어, 의회의 저항이나 주 정부의 소송에 직면했습니다. 예를 들어, 연방 차원의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는 일부 주 정부의 반대로 인해 연방법원에서 중단 명령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되고 제한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미국의 행정명령은 단독으로 작동하는 절대권력이 아니라, 견제와 협의 속에서 작동하는 정치적 수단이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이처럼 행정명령은 신속하게 정책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도구이지만, 그 집행 과정은 의회의 감시와 사법부의 판결에 의해 제한될 수 있어, 절대적인 권한은 아닙니다.

 

 

 

셧다운은 왜 반복될까? 예산안 정치의 민낯

 

미국 정부는 매년 회계연도 시작 전까지 예산안을 통과시켜야만 공공기관이 정상 운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산안이 제때 통과되지 않으면, 정부 기관 일부가 문을 닫는 '셧다운'이 발생합니다. 이는 예산안 처리 권한을 가진 의회에서 양당 간 대립이 극심해질 때 자주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이어진 트럼프 행정부의 셧다운은 무려 35일 동안 지속되며 미국 역사상 최장기 셧다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약 57억 달러의 예산을 요구했는데, 이를 두고 민주당과 극심한 대립이 벌어졌습니다. 민주당은 장벽 건설이 효과적인 국경 통제가 아니며 인도주의적·예산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고, 예산안 처리가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셧다운 기간 동안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이 모두 문을 닫고, 뉴욕의 엘리스섬과 자유의 여신상 방문도 제한되었습니다. 식품안전 검사가 지연되고, 일부 공항에서는 보안검색 요원이 결근하면서 항공편 지연이 늘어났습니다. 수많은 연방 공무원들이 무급으로 일하거나 강제로 출근하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고, 일부는 SNS에 ‘#ShutdownStories’ 해시태그로 자신의 고충을 공유하며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한편,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 기간 중에도 백악관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협상을 시도했지만, 기자들 앞에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장면이 생중계되면서 갈등이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국가를 인질로 잡고 있다'며 비판했고, 공화당 내 일부 중도파 의원들마저도 대통령의 고집을 우려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예산 갈등을 넘어, 미국 정치가 어떻게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헌법적 절차를 지키며 움직이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셧다운은 단순한 행정적 마비가 아니라, 정치적인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특히 양당이 상하원 중 하나씩을 나눠 갖는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상황에서는 셧다운 발생 가능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부채한도 협상: 미국판 '재정 절벽'의 정치학

 

미국은 연방정부의 부채 발행 상한선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으며, 이 한도를 초과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를 '부채한도(debt ceiling)'라고 하며, 이 조정 문제를 둘러싸고도 매번 정치적 대립이 반복됩니다.

 

2023년에도 바이든 행정부와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이 부채한도 상향을 놓고 치열한 협상을 벌였습니다. 당시 공화당은 정부 지출이 과도하다고 비판하며 사회복지 프로그램, 기후 변화 대응 예산, 공공 인프라 투자 등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최소한의 공공지출은 유지되어야 한다며 맞섰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국가 디폴트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였고,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주요 투자은행들도 미국 국채에 대한 조기 회수를 검토하는 움직임까지 보였습니다.

 

결국 극적인 막판 타결이 이루어졌고, '재정책임법(Fiscal Responsibility Act of 2023)'이 통과되어 부채한도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습니다. 대신 공공지출 상한 설정과 일부 복지 프로그램 동결, 국방비 인상 등 양당의 절충안이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이 협상 과정에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공화당 내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균형을 맞추느라 곤혹을 치렀으며, 이후 그의 리더십이 내부 비판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5년 3월 현재, 이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 협상에서 약속된 지출 상한선을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보고, 일부 분야에서 강경한 재조정을 추진 중입니다. 특히 국방비와 국경안보 예산은 대폭 확대하는 반면, 환경 정책이나 복지 지출은 다시 삭감 대상이 되고 있어, 민주당과의 갈등이 다시금 격화되는 양상입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3년 합의 당시 민주당이 주장했던 일부 조항은 '바이든식 관료주의의 흔적'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어, 향후 부채한도 협상이 다시 재점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부채한도 협상은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 향후 경제정책의 방향과 정부의 지출 철학에 대한 이념적 충돌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시장 역시 이 협상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외교정책에서의 갈등: 조약과 승인권

 

미국 대통령은 외교 정책에서 상당한 권한을 갖지만, 조약 비준은 반드시 상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대외 전략이 의회의 동의를 얻지 못해 좌절되거나 지연되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sia)의 일환으로 추진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의회에서 끝내 비준받지 못했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탈퇴했습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했던 일부 대이란 정책이나 나토(NATO) 관련 입장에 대해 의회가 초당적으로 반대의견을 낸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외교정책에서도 대통령의 독자적인 리더십은 강력하지만, 의회와의 조율 없이는 지속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으며, 때로는 국가의 대외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어서...

 

다음 글에서는 "미국 정치 시스템을 이해해야 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이유"를 주제로, 정치 구조와 경제 사이의 밀접한 연결고리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정책과 시장이 맞물려 움직이는 역동적 구조를 함께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