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금이란 무엇이었을까?
한국 사람들에게 '금'은 단순한 귀금속이나 투자 자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삶과 문화, 감정의 결 속에 자리해온 따뜻하고도 묵직한 존재였습니다. 갓난아기의 돌잔치에서 받는 금반지, 결혼 예물로 주고받는 금목걸이와 금팔찌, 명절이면 금은방을 찾는 어머니들의 발걸음. 금은 가족의 사랑이자, 안정을 의미했고, 때로는 '비상시를 대비한 보험'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가정에서는 오랫동안 금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자산으로 여겨왔습니다. 은행 계좌에 있는 숫자보다, 손에 쥔 금반지 하나가 더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그래서 실제로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결혼을 준비할 때, 금반지를 몇 돈씩 미리 장만해두곤 했습니다. 금은 단지 재산이 아니라 가족의 기억과 정서가 담긴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IMF 외환위기와 금 모으기 운동
1997년 말, 한국은 경제적으로 전례 없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줄어들고, 원화 가치는 폭락하며 수많은 기업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는 단지 수치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우리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라는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1980~90년대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이루며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의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세계에 한국의 위상을 알렸고, 1990년대 초반까지도 경제는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취약한 구조가 숨어 있었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는 과도한 부채에 의존했고, 재벌들은 차입 경영을 통해 무리한 확장을 거듭했습니다. 동시에 금융 부문은 규제가 미비했고, 단기 외채 의존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97년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였습니다. 태국 정부가 과도한 부동산 개발과 단기 외채 의존으로 인해 통화 가치를 방어하지 못하고 바트화를 사실상 평가절하하면서 위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충격은 투자자들의 불안을 키웠고, '신흥국 위험 회피' 현상이 일어나며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당시 세계 금융 시장은 태국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들, 특히 같은 방식으로 외채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도 잠재적인 위험국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빠르게 자금을 회수했고, 이는 곧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 여파로 부실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연쇄 파산과 신용 경색은 은행 시스템 전반을 마비시켰습니다. 이처럼 아시아 외환위기의 불씨는 한국이라는 또 다른 성장국가로 옮겨붙으며, 한국 경제를 뿌리째 흔드는 위기로 번진 것입니다.
결국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IMF 사태' 혹은 '외환위기'로 기억하게 됩니다.
그 혼란의 시기, 많은 국민들이 스스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금을 모아 나라를 살리자는 취지의 '금 모으기 운동'이 전개된 것입니다. 정부나 법의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참여였습니다. 집에 있던 결혼 예물, 돌반지, 금 목걸이, 금팔찌, 심지어는 칫솔 손잡이에 박힌 금까지 모아 국민들이 하나둘씩 은행으로, 공공기관으로 내놓았습니다.
1998년 1월부터 불과 몇 달 사이에 약 350만 명의 국민이 참여하여 227톤이 넘는 금이 모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치를 넘어, 국민적 연대와 희생, 신뢰의 상징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의 추억이 담긴 금을, 누군가는 노후를 대비해 모아두었던 금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금은 외환보유고의 일부로 전환되어 국가 경제 회복에 쓰였습니다.
금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25년 동안 금은 단지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은 IMF 체제를 졸업한 이후 본격적인 수출 주도 성장과 IT 산업의 확장으로 경제 재건에 성공했습니다. 당시에는 금보다는 부동산이나 주식, 예금이 주요한 자산 축적 수단으로 부각되었고, 금은 상대적으로 '과거의 자산'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은 다시 한 번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고,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적인 신용경색이 발생하자,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금값은 빠르게 상승했고, 다시 한 번 '금은 위기 때 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금 투자는 금은방을 넘어, 온라인 골드뱅킹, 금 통장, 금 ETF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었고, 투자 자산으로서 금은 새로운 세대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고금리 기조, 그리고 고물가 상황이 겹치면서 금은 다시 '위기의 자산',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피난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원화 약세와 달러 강세가 동시에 진행될 때, 금은 한국 투자자들에게 환율 리스크를 완화하는 실질적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한국은행 역시 일정량의 금을 외환보유고에 포함하고 있으며, 세계 중앙은행의 금 매입 흐름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은 우리에게 '위기 때 함께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998년 그 겨울, 누군가의 장롱 속에 있던 작은 금반지가, 국가의 통화 위기를 막는 데 보탬이 되었던 그 기억은 —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조용히 반짝이고 있습니다. 그 기억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 오늘날 우리가 다시 묻고 있는 질문, "과연 진짜 안전자산은 무엇인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편 예고▶️ "금 vs 달러 — 위기 시대의 진짜 안전자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