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에도 다양한 얼굴이 있다: 만기, 이자, 구조별로 나뉘는 미국 국채의 세계
앞서 미국 국채의 개념과 역사, 그리고 그것이 왜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미국 국채가 실제로 어떻게 구분되는지,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10년물', '30년물', '물가연동채' 같은 용어들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풀어보려 합니다.
만기에 따라 나뉘는 미국 국채
미국 국채는 만기(Maturity)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여기서 '만기'란 채권을 발행한 정부가 원금을 상환하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단기 국채: Treasury Bills (T-Bills)
만기가 1년 이하인 국채입니다. 가장 짧게는 4주, 8주짜리도 있으며, 일반적으로 3개월, 6개월, 1년짜리가 주로 발행됩니다. 이들 채권은 이자를 따로 지급하지 않고, 할인 발행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1,000달러짜리 채권을 980달러에 구매하고, 만기 시 1,000달러를 돌려받는 방식입니다. 이 차익이 곧 수익이 되는 것이지요.
중기 국채: Treasury Notes (T-Notes)
2년, 3년, 5년, 7년, 10년 만기의 국채를 말합니다. 일반 투자자부터 기관까지 모두 관심을 가지는 핵심적인 국채 유형이며, 특히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기준금리'처럼 취급될 정도로 중요합니다. 중기 국채는 6개월마다 고정 이자(Coupon)를 지급하며, 만기 시 원금을 상환합니다.
장기 국채: Treasury Bonds (T-Bonds)
20년 또는 30년의 만기를 가진 장기 국채입니다. 긴 투자기간만큼 안정성을 중시하는 연기금,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들에게 적합합니다. 역시 6개월마다 이자를 지급하며, 만기까지 보유 시 원금을 돌려받게 됩니다. 장기 국채는 금리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크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물가와 금리에 따라 구조가 다른 특별한 국채들
미국 국채에는 만기 외에도 구조적으로 차별화된 특수한 형태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물가연동채(TIPS)와 변동금리채(FRNs)입니다.
물가연동채: Treasury Inflation-Protected Securities (TIPS)
TIPS는 말 그대로 물가 상승률에 따라 원금이 조정되는 국채입니다. 일반 채권은 고정된 금액을 기준으로 이자를 지급하지만, TIPS는 미국 노동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기준으로 원금 자체가 인플레이션만큼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자는 조정된 원금 기준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더라도 실질 수익률을 지켜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령, 연 2%의 이자를 지급하는 TIPS를 1,000달러어치 보유하고 있다고 해봅시다. 연간 인플레이션율이 3%라면, 다음 해에 원금은 1,030달러로 조정되며, 이자는 그에 따라 20.6달러가 됩니다. 일반 채권이라면 1,000달러 기준으로 20달러의 이자를 받을 테지만, TIPS는 물가 상승률까지 반영하여 조금 더 높은 이자 수익을 가져다줍니다.
현실적인 예로, 만약 당신이 몇 년간 자녀의 학자금이나 은퇴 자금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고 할 때, 물가가 급등하면 고정금리 채권의 실질 수익률은 감소합니다. 반면 TIPS는 물가에 맞춰 가치가 자동 조정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구매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합니다.
최근처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시기에는 TIPS에 대한 수요도 자연스럽게 증가합니다. 대표적인 ETF로는 iShares TIPS Bond ETF(TIP) 등이 있으며, 복잡한 직접투자 대신 ETF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변동금리채: Floating Rate Notes (FRNs)
FRNs는 이자율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일정 주기마다 변동되는 국채입니다. 일반적인 미국 국채는 발행 시 고정된 이자율이 만기까지 유지되지만, FRNs는 3개월마다 이자율이 재조정됩니다. 이 기준은 보통 미국 재무부의 단기 채권 금리나 시장금리에 연동되기 때문에, 기준금리가 오르면 이자도 함께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은행 예금 금리가 갑자기 오르면 예전 채권은 여전히 낮은 이자만 주기 때문에 불리하겠지요. 하지만 FRNs는 마치 "변동금리 예금"처럼 금리 상승분을 반영해 이자를 갱신해 줍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에는 고정금리 채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보통 2년 만기로 발행되며, 단기금리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어, 단기 운용을 고려하는 투자자나 금리 변화에 민감한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각기 다른 성격, 다양한 활용법
이처럼 미국 국채는 단순히 '국채' 하나로 묶어 말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만기, 이자 구조, 물가 연동 여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뉘며, 각기 다른 목적과 투자 환경에 맞춰 전략적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제 각 국채 유형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활용될 수 있는지를 예시와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단기 국채는 언제 필요할까요?
단기 국채(T-Bills)는 만기가 1년 이하로 짧기 때문에 유동성이 매우 높습니다. 즉, 필요한 시점에 현금화하기가 용이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6개월 후에 집 전세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있어 당장 그 돈을 쓰지는 않지만 은행에 그냥 넣어두기엔 아쉬운 경우, 단기 국채는 훌륭한 대안이 됩니다. 고정된 수익률과 함께 비교적 안전한 방식으로 단기 자금을 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기 및 장기 국채는 어떤 투자자에게 적합할까요?
중기(2~10년)와 장기(20~30년) 국채는 장기적인 자산 안정성과 이자 수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투자자들에게 잘 맞습니다. 은퇴 후 정기적인 이자 수익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자녀의 대학 학자금을 몇 년간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은 부모의 입장에서 중장기 국채는 매우 안정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10년물 국채는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일종의 '기준 이자율'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그 수익률의 변화는 여러 금융 상품에 영향을 줍니다.
TIPS는 물가가 오를 때 빛납니다
앞서 설명한 물가연동채(TIPS)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산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최근처럼 생활물가가 급등하고 장바구니 물가가 체감적으로 부담스러울 때, 고정금리 채권은 오히려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반면 TIPS는 물가에 따라 원금이 조정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자산의 실제 가치를 유지하는 데 유리합니다. 은퇴자금, 장기 저축, 학자금 목적의 자산이라면 특히 고려할 만합니다.
FRNs는 금리 변화에 민감한 시장에서 유리합니다
변동금리채(FRNs)는 기준금리와 함께 이자율이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될 때 주목받는 상품입니다. 한국은행이나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황에서는 고정금리 채권보다 FRNs가 유리할 수 있습니다.
마치 "변동금리 예금"처럼 금리 변화에 따라 수익도 조정되므로, 단기적인 금리 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싶은 투자자에게 적합합니다.
이제 뉴스에서 '10년물 국채가 급등했다', 'TIPS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금리 인상기에 FRNs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보셨을 때, 단순히 지나치지 않고 그 배경과 의미를 스스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